감시탑의 다락문이 캡틴 헤이즐우드가 뛰어 올라간 것 때문에, 뒤로 강하게 부딪혔다. 오직 이아손 일병만이 그의 임무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 건강했고, 그는 어깨너머로 헤이즐우드가 식은땀을 흘리게 할 정도로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드러냈다.


'망원경 가지고 계십니까, 캡틴?' 이아손 일병이 눈가에 손을 올린 채로, 남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는 많은 것 같습니다.'


헤이즐우드는 망원경을 꺼낸 후 접안구에 눈을 가져다 댔다. 최근에는 요새 전체에 유독한 증기가 짙어져 멀리 내다보는 게 어려웠지만, 히쉬의 빛은 수평선 너머에서 웅성거리며 다가오는 이들의 윤곽을 드러낼 만큼은 밝았다.


'이번에는 숫자가 많군,' 그가 말했다. '그리고 뭔가... 달라. 말도, 뿔도, 부정한 성장의 징후도 없어.' 그는 떨리는 숨결을 내뱉었다.


'병사들이 오고 있는 겁니까? 드디어 기라가 마음을 바꾼 겁니까? 에버퀸을 찬양하라!' 아이손이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소란떨지 말게. 그들을 관문에서 맞이하지,' 헤이즐우드가 답했다. 그는 다시 사다리로 향하면서,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사람들이 그린워터의 관문 주변에 몰려들어 군중을 형성했다. 그들은 낡아 헤진 넝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있었기에, 지원군이 도착했을 거라는 헤이즐우드의 믿음을 깨부쉈다. 그들의 지도자는 어깨 위로 초승달 모양의 낫을 기대고 있었고, 그 위에는 다양한 뼈들이 매달랴 있었다. 그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전사였다. 여전히 서 있을 정도로 건강한 경비병들은 최대한 그 존재들과 멀리 떨어질 수 있는 위치에 진을 치고 있었고, 헤이즐우드도 그러한 모습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신앙심 때문에 찾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이아손이 속삭였고, 그의 목소리는 헤이즐우드가 좋아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성전을 꺼내서 들이밀지 못하게 하게,' 헤이즐우드가 그들의 후드 쓴 지도자에게 도착하기 전에 답했다. 그는 양팔을 넓게 펼쳤다. '캡틴 헤이즐우드, 그린워터의 치안관. 그대가 여기 있음에 감사하네.'


노련한 전사는 내밀어 진 손을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갈라진 입술에 침이 번들거렸다.


'방랑하는 기사이자, 만인의 친구, 그리고 저의 군주인 제리온 경을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영웅의 곁에 선 허리가 굽은 여자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분한 웅성거림이 경비대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 서머킹의 서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토리아의 선량한 사람들은 그 땅을 덮친 더러운 저주로부터 구원받을 것입니다.'


헤이즐우드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떼었지만, 다른 목소리에 의해 방해받았다.


'당신이 정말 역병의 군대에 맞서 3일 밤낮을 싸운 그가 맞습니까?' 간신히 캡틴을 밀치고 나가려는 충동을 참아낸 경비 중 하나가 물었다.


'저도 그가 마름병 걸린 정원사 로드 우르객스를 일기토로 쓰러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손이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주변의 정착지들을 규합하여, 절망적인 역병이 맞서 싸우고 있었답니다. 사람들이 기적의 사나이라고 부르고 있다고도 합니다.'


헤이즐우드는 망설였다. 그의 뒤로 수백 개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망이 느껴졌다. 마침내,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나 쉬었다. '이렇게 절박한 시간에는 어떠한 동맹이라도 환영입니다.'


'그대의 농노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아 주시지요, 훌륭한 분이시여.' 제리온의 시녀가 지껄였다. '우리의 사람들이 무대를 준비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성한 메시지가 그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겁니다.'

제리온 경의 추종자들은 재빨랐지만, 그리 훌륭한 솜씨를 가지지는 못했다. 그들이 만든 연단은 장인정신의 산물보다는 난잡한 잔해의 더미에 가까웠다. 아직 절망-역병에 완전히 무력화되지 않은 정착민들은 경비병에게 이끌려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비록 얼굴은 창백하고 역병에서 오는 고통으로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다음 끼니를 기다리는 굶주린 사람처럼 강렬하게 구세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제리온 경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헤이즐우드가 경비탑의 외벽에 기대어 선 채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린워터는 역사책에서나 크리스토리아라 불린다고.'


"웅장함을 더하는 겁니다, 캡틴." 이아손이 주장했다. 그는 여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서 있었고, 그의 눈은 다시금 집중력을 발휘하며 절차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영웅을 연기하고 싶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제리온 경이 무리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 난잡하게 쌓아올려 진 통나무 위로 올라섰고, 군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고독한 전령에게서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가 터져 나오자 모여든 군중은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소리가 점차 단어로 합쳐져 듣는 이들에게 묘한 편안함을 심어주자 충격은 금세 사라졌다.


'서머킹께서... 그대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헤이즐우드는 그의 칼 손잡이를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나무를 못으로 긁는 것 같은 제리온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헤이들우드는 주위에 있는 정착민들이 모두 넋이 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그의 전언이다.'


제리온 경은 그의 낫으로 손을 뻗어 아직 선혈에 젖어 번들거리는 대퇴골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가 전서함을 열려고 시도하는 것 마냥 움직이는 사이 소매가 걷어 올려져, 뒤틀린 뼈처럼 앙상한 손이 드러났다.


헤이즐우드는 그의 칼을 뽑아들었다.


'경비-'

제리온은 그의 머리를 젖혀, 후드를 벗었고, 그 뒤에 숨겨져 있었던 왜곡된 얼굴과 대머리를 드러냈다. 그는 입안 가득 찬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고, 뼈를 들어 올린 후 부러트렸다. 붉은 독기가 뼈에서 피처럼 쏟아져나와, 비명 지르는 군중을 휘감았다.


헤이즐우드와 이아손은 무기를 들고, 제리온에게 달려갔지만, 짙은 독기가 그들을 휘청거리며, 멈추게끔 하였다. 주변을 둘러싼 주민들은 혼란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몇몇은 필사적으로 떠나려고 했지만, 인파의 파도 속에서 연단 앞으로 떠밀려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제리온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짐은 그대들이 고통받는 소리를 들었노라, 크리스토리아의 고귀한 민속들이여.'


제리온의 사도 중 하나에게서 짙은 붉은빛의 독기가 흘러나왔다. 헤이즐우드가 때마침 고개를 돌린 순간, 괴물의 발톱이 뺨을 할퀸 것을 느꼈고 즉시 검으로 그 괴물을 밀쳐냈다. 공격당하는 그 순간에도 괴물은 으르렁거리며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으로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짐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을 보내니... 그대들의 훌륭한 도시를 구원할 것이다.'


매 단어마다, 제리온의 목소리가 더 커졌고 선명해졌다. 그의 짐승 같던 거슬리는 목소리는 전성기의 풍부한 바리톤으로 대체되었다. 이 기이한 변화는 헤이즐우드가 구울 공격자의 더러운 발톱에 상처를 입을 때까지 주저하게 하였다. 그는 울부짖으며, 상처를 움켜쥐었고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넘쳤다.


정착민들의 비명이 웃음으로 바뀌었고, 붉은 독기가 짙어지면서 광장은 즐거움에 찬 소리로 가득 찼다. 많은 이들이 위아래로 뛰거나, 춤을 추거나, 연단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서머킹께 충성을 맹세한다면... 그대들은 확실하게 구원받을 것이네.'


헤즐우드는 끔찍한 고통의 물결이 귀를 강타하는 걸 느꼈다. 첫 번째 구울이 그의 칼날에서 벗어나, 그의 옆구리를 발톱으로 공격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 소리는 즐거워하는 군중의 소음에 묻혀버렸다.


몇 발짝 떨어진 장소에는 이아손의 시체가 휘저어대는 무리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여자 하나가 그 위에 웅크려 있었고, 그녀의 절망-역병의 영향으로 흉터 지고 패여 있었던 피부에 생기가 돌아왔으며, 그 눈은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헤이즐우드가 그의 마지막 숨결을 내뱉으며 본 풍경은 그녀가 이아손의 살점을 뜯어내 통통하고 미소 가득한 입술로 가져가기 전, 연단의 전령을 향해 높이 치켜드는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그를 둘러싼 어둠과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